2023. 3. 13. 14:00ㆍ카테고리 없음
7회 초 : 첫 안타가 나왔다.
악마의 2루수 정근우. 고려대 시절 많이 봐왔는데 그때부터 정말 잘하는 선수였다. 저렇게 키가 크지 않은 선수가 야구를 왜 이렇게 야무지게 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노아웃 1루. 오타니의 투구 수는 70개이다. 다음 타자 이용규 선수도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에 화가 많이 난 듯하다. 바깥쪽 먼 공도 스트라이크 콜하니 이용규가 움직이는 동작이 많아졌다. 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억지로 따라간 스윙이 분명하다. 투구 카운트가 코너에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김현수만 만나면 전력으로 투구하던 오타니가 초구는 직구를 던지지 않고,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아냈다. 발도 한 번 풀어보기도 한다. 일본팀이 김현수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만큼 오타니도 김현수를 많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끈질긴 승부 끝에 김현수도 스윙 삼진으로 2아웃이 되었다. 모자를 벗은 오타니의 얼굴도 정말 잘 생겨 보인다. 외모도 정말 출중한 것 같다. 이대호도 땅볼로 아웃되었다.
7회 말 :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아니었다면
마운드는 심창민 투수이다. 미국 전에서 2이닝 4삼진을 기록하여 이번 경기에도 출전하였다. 심창민의 공이 존을 많이 벗어나는 것 같다. 결국 바깥쪽도 스트라이크 콜을 잡아주지 않으면서 볼넷으로 내보내게 되었다. 정말 정말 정교하지 않으면 볼넷이나 공이 몰려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심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경기 전에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면 좋지 않겠냐고 불만 섞인 토로를 내뱉는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이런 정상적이지 않은 경기에서 결국 이겼다니. 그러니 대한민국을 크게 외칠 수밖에 없다. 바깥쪽 빠른 공이 또 볼이 선언되었다. 결국 그 똑같은 공도 또 볼을 외친다. 양의지 포수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 일어선다. 카메라에 잡힌 김인식 감독도 전의를 상실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이 어린 심창민 투수가 정신력이 흔들리며 볼이 빠져 결국 볼넷. 연속 볼넷으로 노아웃 1루와 2루가 되었다. 안타를 겨우 3개 허용했지만 3:0으로 지고 있다. 이 위기를 이길 수 있다고 코치진에서 믿는 투수는 정우람이다. 방송에 자막을 띄워 준다. 경기 중에 심판의 이름을 띄우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미국 주심의 이름은 마르쿠스 파틸로이다. 나도 이번 기회에 이름을 한 번 외우게 되었다. 정우람도 바깥쪽 공이 좋은 투수인데 그것마저 스트라이크를 선언해 주지 않으면 이번 경기는 정말 어렵겠다. 츠츠고 요시토모는 정우람의 바깥쪽 공에 삼진으로 돌아섰다. 다음 타자는 이번 대회 13타점을 기록한 나카타 쇼. 그러나 중견수 방향 뜬 공으로 아웃되었다.
8회 말 : 정우람의 힘이 빠지니, 임창민이 막아냈다. 야구는 팀 스포츠
히라카 료스케가 안타로 출루하였다. 하위 타선인데도 잘 쳐낸다. 이어 연속 안타를 허용한 정우람 선수이다. 총력전을 벌여야 하므로 투수는 임창민으로 교체되었다. 아웃 카운트 한 개만 잡아내면 되는 임창민이다. 당시 NC다이노스의 뒷문을 잘 막아냈었다. 임창민은 바깥쪽 떨어지는 공으로 유인하는데 일본 타자들이 잘 속지 않는다. 풀카운트 상황에서 바깥쪽 스트라이크 스윙으로 이닝을 막아냈다.
9회 초 : 마지막 공격. 명장면의 홍수
이승엽 해설위원이 이닝 시작 전 발언을 한다. 오재원 선수는 쇼맨십이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분위기 반전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한 분야에 월등한 사람들은 이런 느낌조차 뛰어난 것일까?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잘 예상하는 것 같다. 지금 보니 오재원 선수의 타격 전 루틴이 엄청났다. 홈 플레이트에 몸을 가까이하여 포수를 가렸다. 저런 동작들이 투수들에게는 엄청나게 거슬릴 것이라고 해설위원이 말한다. 반격의 서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게 아닐까? 헛스윙하고도 동작이 매우 크다. 상대 팀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산만하고 눈에 거슬린다. 결국 오재원은 무너진 타구 폼으로 허리를 숙이며 툭 갖다 댄 방망이에 안타를 만들어 냈다. 1루에 가면서 일본 벤치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제스쳐를 취해본다. 다음 타자는 손아섭. 초구 스윙이 경쾌하지만 파울이다. 손아섭의 타구가 투수를 맞고 연속 안타가 되었다. 노아웃에 주자가 1루와 2루가 되었다. 그다음 타자는 오늘 오타니에 첫 안타를 만들어냈던 정근우. 투수는 노리모토이다. 150km를 던지지만 오타니처럼 위에서 내리꽂는 투구가 아니고 작은 키에서 직선으로 가는 투구이기네 오타니만큼 우리 선수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것 같다. 정근우도 초구에 헛스윙하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느꼈다는 듯이 한국팀 벤치를 쳐다본다. 묘한 미소를 띠며 말이다. 그리고 바로 3루 방향 안타를 쳐낸다. 미친 정근우다. 나는 지금 느꼈고 그 느낀 걸 바로 보여주겠다는 결과다. 오재원은 홈을 밟으며 첫 득점을 해냈다. 스코어는 1:3. 빠른 발의 정근우는 2루까지 갔다. 주자는 2루와 3루. 타자는 이용규. 굳은 표정과 다르게 미소를 보이는 이용규다. 이용규의 소속팀인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팬도 관중석에 보인다. 노리모토의 21구는 이용규에 몸에 닿았다. 노아웃에 주자는 만루이다. 일본 코치진이 마운드에 올라와 흐름을 끊는다. 김현수의 만루 찬스다. 노리모토 투수는 물러나고 나이가 어린 마츠이 유키 선수다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대호는 마츠이와 자주 붙어봤기 때문에 김현수에게 대기하면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개막전에 마츠이에게 안타를 뽑아냈던 손아섭도 김현수에게 다가가 간단한 조언을 하였다. 마츠이는 2구 연속 바깥쪽으로 볼을 빼냈다. 적극적으로 붙어 보자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3 볼 카운트까지 왔고, 이승엽 해설위원은 직구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대결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또 볼을 빼냈고, 김현수는 그대로 보고 볼넷으로 출루해 밀어내기 득점하였다. 스코어는 3:2이며, 다음 타자는 조선의 4번 타자이다. 이대호를 모르는 일본팀의 선수가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마츠이도 물러나게 된다. 흔히들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집요하고 약점을 계속 파고든다고 하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우리나라가 일본과 만나면 더 집요하고 훨씬 더 약점을 파고드는 것 같다. 이 순간 이승엽 해설위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마츠이 이후 교체된 투수는 좋은 투수이긴 하지만 이런 압박감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 하지만, 방송 멘트이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이걸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확실한 말투이다. 초구는 변화구를 던졌고 이대호는 지켜보았다. 그 이후 2구에 대해서는 이대호가 다른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두 번째 공은 직구가 반드시 올 거라 확신해서 휘둘렀는데 직구가 아니라서 파울이 됐다고 하였다. 그 이후 공도 다시 직구만 노렸다고 한다. 3구는 바깥쪽 공을 또 스트라이크 콜을 부르지 않다 볼이 되었다. 4구를 이대호가 드디어 안타를 쳐낸다. 스코어는 4:3으로 역전되었고 모두가 환호성을 터뜨린다.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경기가 끝나는 것 같은 분위기다. 3시간 반 만에 처음 앞서는 스코어이다. 이대호는 대주자로 교체되어 나성범이 주자로 갔고, 박병호의 타석과 황재균은 아웃이 되었고, 9회 초에 다시 오재원 타석으로 한 바퀴가 돌았다. 오재원 선수 정말 웃음 나올 정도로 타석 전에 동작이 너무 많다. 투수와 포수가 산만함을 느낄 만 하다. 여기서 경기 결과와 상관없는 명장면이 나온다. 오재원이 뜬 공으로 타격 후 배트 플립을 하였는데, 중견수 멀리 뜬 공으로 아웃되었다. 솔직히 경기는 한국이 이겼는데, 오재원이 다 이긴 것 같은 느낌의 세레머니였다.
9회 말 : KBO 최고의 마무리 투수 정대현과 이현승
베이징올림픽과 프리미어12의 최고 마무리 투수 정대현이 나왔다. 먼저 헛스윙으로 1아웃. 박병호의 호수비로 2아웃. 마지막 한 개의 아웃 카운트가 남았다. 엄청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다. 나카타 쇼가 안타로 출루하였고, 일본은 나카무라를 대타로 내세웠다. 그러자 선동열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하여 맞불을 놓는다. 정대현의 큰 투구폼으로 도루를 대비한 투수 교체로 이현승 투수가 나왔다. 이현승도 두산에서 폼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잘 막아낼 것이라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초구에 바운드 볼로 위험했지만, 강민호 포수가 잘 대처하며 도루는 막았다. 나카무라의 타구가 3루수를 향했고, 3루수는 1루로 강하게 송구하여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총평 : 오타니+일본 > 한국 but 일본 < 한국
이 경기를 한국의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일본의 관점에서 보고 싶다. 일본이란 나라는 한국보다 뭔가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일본 국민 모두에게 오타니라는 존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타니가 일본인 모두의 정신을 지배하고 영향을 줄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타니만 믿고 있던 일본 그 자체는 9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승리가 확정되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9회에 오타니가 없이 무너지는 일본의 패배에 대한 충격이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생각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더 월 등하고 더 집요하고 더 집중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타니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나 일반적인 상황을 예외성이 생기도록 만들어냈지만, 기본 베이스는 한국이 일본보다 우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야구와 한국의 야구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26명의 대표팀만 뽑자고 보면, 일본의 대표팀보다는 한국의 대표팀이 우세하다고 본다. 거기에 오타니를 제외하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보기에 다가오는 올해 대회에도 오타니라는 변수에 다른 변수가 오타니에 덮인다면, 우리도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오타니는 더 성장하였지만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정말 논란이 많았던 안우진을 가상으로 오타니와 맞대결해 본다고 상상하니 정말 흥분되고 궁금하다. 그러나 안우진은 아직 처벌을 더 받고 와야 한다. 다가오는 한일전. 한국 대 대한민국. 교과서를 정독하듯이 경기를 지켜봐야겠다.